참 괜찮은 태도
KBS '다큐멘터리 3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내가 참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TV 화면에 누군가 우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감수성이 풍부한, 요즘 말로 공감 능력이 뛰어난 나로서는 이 프로그램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특히나 매번 다른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방송 분량이 끝나는 시점엔 마치 이웃이 되기도, 동료가 되기도 해서 사람들과 헤어져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에 행복이 담겨 있진 않지만, 어떤 다정함이나 따듯함을 만날 때면 짧은 시간에 '인간다움'을 담아 시청자인 나에게 닿게 만든 제작진의 능력에 늘 감탄해 마지않았다. 요즘같이 인류애를 잃기 쉬운 시대에 누군가의 따듯한 이야기는 나에게도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 행복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참상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 속에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이야기 역시도 큰 울림을 주었다.
<참 괜찮은 태도>라는 책은 '다큐멘터리 3일'과,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 한 저자가 15년 넘게 카메라를 들고 국내외 곳곳을 누비며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일부를 글로 옮겨 놓았다. 그래서인지, 두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던 나는 이 책에서 방송으로 봤던 이야기를 다시 만날 때 촬영 현장을 방문한 듯 반가운 마음에 들뜨기도 했다.
안정 빼고 다 해도 됩니다.
'아기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근거가 없다.' 이 이야기는 다태아 분야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전종관 교수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모든 주제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야기들이 나의 생각을 확장시키기도, 태도를 변화시키기도 했지만, 얼마 전-이라고 하지만 벌써 두 달 전쯤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던 전종관 교수 이야기가 있어 몇 자 인용해 본다.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산모가 임신을 하면,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있다가 열 달이 차면 분만실에 들어가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전종관 교수는 임산부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로 "안정 빼고 다 해도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더해 누구를 위한 안정인지, 왜 태아만 걱정하고 임산부 걱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인 가에 대해 토로한다. 안정을 이유로 건강한 임산부의 신체활동을 저지하면 오히려 산모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직접 보지 못한 세계는 알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임신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생기는 줄로만 착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도 사회 뉴스면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모성이란 감정을 상실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주하면 우리는 당연하게도 분노를 한다. 사실 그들의 인간답지 않음에 분노를 해야 하는데, 모성 본능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더 크게 비난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저지르는 패륜보다 더 용납하지 못한다. 사회는 잉태와 함께 모성애가 당연히 생겨나는 '본능'처럼 떠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만삭의 몸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보며 여전히,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모성본능을 뒤로 미뤄두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모성본능이라는 게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사회는 임신을 하게 되는 순간 한 사람이 '엄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빠'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말이다. 나 또한 이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그런 줄로만 착각하고 살았다. 엄마는 당연히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상대적으로 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와닿아 깨달음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들이 전업주부든 직장을 다니든지 자기 인생을 잘 살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삶의 의미
저자가 발로 뛰며 얻은 귀중한 경험을 나눈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더해 이 책에서 만나는 이야기들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태도, 관찰자의 따듯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몇 달 전에 처음 읽게 되었다. 그 후로도 가끔 어떤 위안을 받고 싶을 때면 목차를 쭉 훑어내리기도, 어떤 제목에 끌려 그 챕터를 읽어나가기도 한다. 물론 그 어떤 장을 펼쳐도 좋다. 그 안에 따듯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삶을 대하는 어떤 이들의 태도를 보며,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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