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애리얼리
화상을 입는 사고로 병원에서 생활하던 댄 애리얼리는 많은 사람들이 상식 밖의 행동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무엇이 상식 밖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성적이지 않다"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인간의 행동을 알아보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할 이론적 근거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 '상식 밖의 결정들을 모델화'하는 연구로 세계 경제학계를 이끌 차세대 경제학자 반열에 올랐다.
<상식 밖의 경제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첫 번째 저서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MIT 미디어랩과 슬론 경영대학원의 행동경제학 전공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의 연구원과 듀크대학교의 방문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이 책은 비합리적이지만 예측 가능한 인간의 행동 패턴에 대해 말한다. 동시에 비합리적인 인간의 속성에 대하여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점들을 공격하며, 자본주의가 더 나아가 발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알려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읽은 책은 10주년 기념판이다) 저자는 첫 출간 후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세상이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리라 말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경제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간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기존의 경제학이 상식적이라 믿는 모양이다.
원래 우리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우습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비교 가능한 대상이 없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다. 이때 비교 가능한 어떤 상황을 조성하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인간의 가치 판단 능력은 상대적이 때문이다. 다른 것과 비교해야만 상대적으로 무엇이 좋은지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가령, 6기통의 자동차만 있다면 가격 또는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4기통의 자동차와 비교하면 자동차에 대해 모르긴 해도 4기통 보다 성능도 뛰어나고 비싸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사물을 인식할 때 다른 것과 관련짓는다. 인간이란 존재가 절대적인 판단 기준에 의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주변에 무엇을 놓느냐에 따라 우리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또, 인간은 이렇게 '비교하고자 하는 성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비교하기 쉬운 것만 비교하려 드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쉽게 비교하기 어려운 것은 잘 저울질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성 1이 우수한 선택권 'A'와 특성 2가 우수한 'B' 사이에 특성 1이 조금 모자란 'A-'를 끼워 넣는 것만으로 모든 선택권 가운데 'A'가 나아 보인다고 믿는다.
이 내용을 읽고 난 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미끼 'A-'로 보이기 시작했다. TV 판매 매장에서 TV의 크기가 그러했고, 자동차 판매점의 등급별 옵션이 그러했으며, 하다못해 햄버거 가게의 가격표에서도 'A-'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A-'가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임의적 일관성의 존재
수요도 없어 팔리지도 않던 흑진주가 어떻게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보면 위의 실험들보다 더 기가 막힌다. 그저 고급 잡지 전면광고에 손에 쉽게 넣기 어려운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사이에 흑진주 목걸이를 넣었을 뿐이다. 손에 넣기 어려워 보이는 효과만으로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보석이 되었다.
새끼 거위는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여긴다고 한다. 이러한 법칙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임의적 일관성이라고 하는데, 처음 매겨진 가격이 사람의 뇌리에 한 번 자리 잡으면 현재뿐만 아니라 이후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세계 최고의 보석들과 반열에 오른 흑진주의 가격은 이렇게 자리 잡게 됐다. 처음 매겨진 가격이 임의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가격까지 규정해 버린 것이다. 이는 유사한 대상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처음 자동차를 구매했을 때 휘발유의 가격은 1리터에 1400원대였다. 이후 수년이 흘렀고, 이후에도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했지만, 나는 여전히 1500원이 넘어가는 휘발유를 보면 비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초의 기억이 자리 잡은 탓이다.
주위 환경 설계의 필요성
이 책에는 위에 열거한 사례 말고도 재미있는 연구들이 줄을 이룬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예시나 실험 결과 들여다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대부분 바보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교활한 사람들은 기업에 모여 이런 약점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조금 더 영리한 소비자가 되길 바라지만, 언제나 기업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더 나은 방향으로 의사결정하기 위해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엇이 어제보다 오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나아가는 방법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나와 마찬가지 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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